답이 없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면 모든 것에 해답을 만들면 될까?
어느 날 그것이 눈을 뜨자, 온 세상이 시야 아래 있었다.
그저 수많은 관찰자 중 하나라고 하기에는 세상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고, 이토록 광대한 세상을 가졌다기에는 역으로 그 세상에 속하여 발이 묶여 있었다. 이를 깨닫자, 그것은 주변을 배회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눈을 뜸으로써 그럴 만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어느 날 눈을 떴다. 그 아래에는 세상이 있었다.
왜 하필 그것이 눈을 떴을까? 눈은 원래 머리에 달려 있다. 세상의 풍경을 시야에 담는다면 시신경을 따라 어딘가에 있을 뇌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뇌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다른 한 쪽은 또 어디에서 눈꺼풀을 움직이고 있는가? 하지만 이 세상에 '그것'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간단명료하게, 홀로 세상의 상공에서 눈을 떴다.
달리 말해서, 그냥 그것이 눈을 뜬 것 뿐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으니 다른 한 쪽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어렵게 생각하면 자신의 근원을 찾아야 하지만, 그것은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에 다른 해답은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목월(目月)이었다.
번들거리는 점막, 붉은 동공, 푸르스름한 시선은 오늘도 세상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달은 자신을 보호할 필요도 없고 멜라닌 세포를 가질 까닭도 없었다. 그 시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색으로 인해 온 하늘은 붉은 빛으로 물들었고, 푸른 기운의 흔적이 자욱했다.
달은 그렇게 오직 눈꺼풀만을 끔뻑이면서도 세상을 비추는 환한 빛은 잃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뜨기 전보다 더 세상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해가 뜨지 않는 붉은 도시는 어둠에 물들지 않고 있었다. 세상의 수많은 '눈' 들을 위해서 말이다.
달이 눈을 뜨기 전부터 세상에는 수많은 규칙, 법, 수칙⋯ 당연한 사실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 눈은 보이는 것을 전부 믿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을 수 없었다.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말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어떤 위험 요소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답이 없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면 모든 것에 해답을 만들면 될까? 이러한 흐름에 도달할 때 즈음, 이제 세상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왔다.
" 내 시선 아래에서 모호함, 또 다른 경우의 가능성 따위를 잊어라. 모든 것은 그냥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다. "
2023년 2월 초, 대한민국.
" 오늘이 벌써 보름이었나? 달이 크네. "
시끌벅적한 도시의 한 술집, 아직 모두가 잠에 들지는 않은 밤. 나는 오늘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과 만났다. 술잔을 기울이며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한 동기가 옆 창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곧이어 달이 참 둥글고, 큼지막하고, 또 환하다고 이야기 해 오는 것이었다.
" 무슨 소리야, 너 취했어? 넌 저게 보름달으로 뵈나. "
" 이 새끼 취했네, 취했어. 야. 이거 손가락 몇 갠지는 보이냐? "
테이블 옆에는 옛 난로가 따뜻하게 몸을 덥히고 있음은 물론, 차가운 소주 잔 표면에 물방울을 맺히게 했다. 난로 위에서 주전자 물이 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추운 겨울이었고, 또 오늘따라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다른 친구의 말대로 아직 보름달이 되려면 3~4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상현달에서 조금 더 볼록해진 모양새였고 보름달로 착각하기에는⋯ 아무래도 이 친구가 정말로 취했기 때문에 그렇게 본 것 같았다. 술집 내부는 시끄러웠고, 밤하늘은 고요하니 아름다웠다. 친구들은 흥에 겨워 이제는 물잔도 비우지 않고 소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소란을 피우는 모습을 흐린 눈으로 스쳐보내곤, 시선을 다시금 창 너머로 둔다. 오늘따라 달빛이 환하다.
' 평소보다 환하긴 하네. 나도 취했나? '
난시도 없는데 유난히 빛번짐이 심했다, 반달에 가까운 달이 꼭 보름달처럼 보일 만큼. 몇 잔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술집 안이 후덥지근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오늘 컨디션이 조금 받아주지 않는 건지 취기가 오른 듯 싶었다. 그러면 기분이 들떠야 하는데, 오늘은 좀처럼 평소같지가 않았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 현재 대화 주제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애들이 나에게 주목하고 있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일단 여기는 구석진 자리이고, 이 공간 속에서 나에게 신경을 두고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 ⋯ ⋯. "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것 같아서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동시에 의자 뒤로 벗어둔 패딩과 맞닿아 있던 등허리가 싸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더운 곳에 있으면 땀을 흘리니까⋯ 오소소 피부에서 소름이 올라왔다. 누군가 취기를 깨려고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문이라도 열었으려니 생각하며 물잔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나 역시 술을 좀 깨야 할 것 같았다⋯. 물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여전히 시선은 창 밖으로 두고 있던 참이었다. 그 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아,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헛것이 아니었다.
" 어엇, 아⋯? "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빨간 눈동자와 심연의 동공을 가진 거대한 눈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것은 눈꺼풀이라도 있는 양 끔뻑이며 나를 올곧이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히 나는 달과 눈이 마주친 채 얼어붙어 있었다. 고개를 돌릴 수도 없었다. 저것은 분명 달이었다. 달인 것과 동시에 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달과 나의 사이는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아무런 방해물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더 동그랗게 보였고, 환했고, 또 선명했다. 하늘은 붉었고, 주변 소리는 뭉개어져 들리기 시작했다.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찰나의 순간, 불완전한 세상의 틈을 비집어 벌려 영원을 불러온다. 그것은 완전한 세계에서 기인하였다. "
정신을 차렸을 때, 이 곳은 온통 붉은 도시 속 한가운데였다.